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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당하는 이념, 보답받지 못하는 노력​

최근 자유 및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동네를 여기 저기 둘러 다니면서 느끼는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GPL은 너무 순진했다는 점이랑, 다른 하나는 노력이 제대로 보답받는 경우는 (언제나 그렇지만) 드물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 다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악의 축 기업이 하나 있다.

너무 순진한 GPL

GPL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이 소프트웨어를 쓸 때 당신이 갖게 되는 자유를 다른 사람한테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BSD 쪽에서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GPL 입장에서는 자기는 자유를 얻었는데 다른 사람한테 그 자유를 보장시키지 않는 경우를 근본부터 차단할 필요가 있음은 당연한 것이다. GPL이 순진했던 점은 그 다음인데, 보통 사람들은 이런 제약을 걸어 놓으면 그 소프트웨어를 쓰지 않고 그 소프트웨어의 대안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 거의 모든 GNU 소프트웨어는 그것과 거의 비슷한 일을 하는 비-GNU 소프트웨어가 하나씩 달라 붙어 있다. glibc가 그렇고, GCC가 그렇고, GNU Screen이 그러하며, GMP가 그러하지 아니한가!

GCC/LLVM의 경우를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GCC와 LLVM 모두 좋은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한다. GCC는 오랜 기간 유지된 소프트웨어인만큼 연륜이 묻어 나는(다른 말로 하면, 레거시가 쩌는) 코드 베이스가 문제긴 하지만 그 최적화 패스는 절대 무시할 수 없고, LLVM은 GCC만한 연륜은 없지만 코드 베이스가 깔끔하며 다양한 확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LLVM의 시작을 잘 살펴 보면 그 뒤에는 GCC에 울며 겨자먹기로 Objective-C 프론트엔드를 집어 넣어야 했던 애플이 버티고 있다. 물론 XNU/Darwin 자체가 BSD 기반이니 GPL을 좋아할 것 같진 않지만, GCC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LLVM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그 의도가 뻔히 보인다. 아니, 솔직히 까고 말하면 GPL을 기만하는 게 아닌가?

물론, SourceForge가 지고 GitHub이 그 자리를 꿰어 찬 걸 보면 확실히 시대가 바뀌긴 했다. 자유 및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그동안 상호 보완적인(전자는 이념적이고, 후자는 개발 모델에 관한) 개념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요즘 추세를 보면 귀찮고 코드 공유에 도움 안 되는 이념적인 부분을 완전히 제끼고 오픈 소스라는 개념에만 집중하는 느낌이 많이 든다. 하긴 귀찮긴 하다. 당장 나도 요즘 짜는 취미 코드는 대부분 MIT 라이선스거나 아예 퍼블릭 도메인으로 많이 하니까(사실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코드가 없는 게 사실 더 큰 이유다만). 하지만 Zed Shaw가 통렬하게 지적하듯 이념적인 부분을 무시하면 그 코드의 가치는 무시당한다. 결국 이념은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보답받지 못 하는 노력

이번에는 둘 다 (L)GPL인 두 소프트웨어를 살펴 보자. 다른 게 아니고 모질라와 웹킷이다. 모질라는 에릭 레이먼드가 오픈 소스 진영의 커다란 승리라고 자뻑을 했을 만큼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물론 “모든 제품은 죽어서 오픈 소스를 남긴다”라는 웃지 못할 진실의 첫 사례이기도 하지만…. 여하튼, 모질라 재단은 분명히 오픈 소스에서 출발했으나 그 행보는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을 능가하는 이념적인 부분이 더 많다.1 모르겠으면 모질라가 프라이버시 보호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 붓는지 살펴 보면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한편 웹킷은 본래 KDE 프로젝트에서 자체 브라우저를 만들려고 제작한 KHTML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음…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아까도 언급되었던 그 문제의 기업, 바로 애플이 자기 브라우저를 만들려고 KHTML을 포킹해서 대규모로 뜯어 고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애플은 한동안 웹킷을 개발하면서 KHTML한테 주요 패치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원성을 들었다. 지금은 애플 혼자서 웹킷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서 상황이 달라졌지만.) 이 와중에 구글도 자기 브라우저를 만들기 위해서 웹킷을 포킹을 하는 상황이 되면서 졸지에 모질라는 거대 기업 두 개가 뒷받침하고 있는 브라우저랑 경쟁해야 하는 안습한 상황에 처하고 만다.

그 다음은 다들 알고 있는 바이다. 최근 구글 크롬은 전 세계 브라우저 시장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거의 다 따라잡고 다른 브라우저의 사용률도 크게 떨어뜨리면서 선전하고 있다(파이어폭스가 이 와중에 피를 많이 봤다). 더군다나 모바일 브라우저에서는 아예 선택의 여지도 없이 사실상 모든 것이 웹킷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까 구글 크롬이 새로운 IE가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고(구글 크롬을 웹킷으로 바꿔도 논지에는 별 차이가 없다), CSS의 경우 -webkit- 접두사가 표준처럼 받아들여지는 끔찍한 상황도 일어나고 있다.2 물론 이런 상황이 꼭 웹킷 팀 및 구글 크롬 쪽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극적으로 웹 개발자들을 교육시켜서 다른 브라우저도 신경쓰게 만들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건 우려스럽다. 반면 모질라는 새 기능이 나와도 개발자 사이트에 웬만한 주요 브라우저 호환성에 대해 서술하고, 크로스 브라우저 개발을 위한 튜토리얼도 많이 갖춰 놓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뭐 뻔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이념이 귀찮더라도 이념을 무시하지는 말고, 아무리 쓰기 편하다 하더라도 노력을 무시하지는 말자고. 그 이념과 노력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 왔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그 이념과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현실은 시궁창일지라도.


  1. 물론 실용적인 부분도 많이 고려되는 게 사실이긴 하다. APNG와 관련해서 PNG 그룹과 마찰을 빚은 사례를 예로 들 수 있는데, PNG 그룹은 APNG가 PNG와는 달리 실질적으로 영상 포맷이기 때문에 별도의 미디어 타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 모질라는 그렇게 했다가는 하위 호환성이라는 원래의 목표가 사라지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하냐는 실용적인 접근을 취했다. 결국 모질라는 PNG 그룹을 무시하고 APNG 스펙을 그대로 구현했다. 개인적으로는 PNG 그룹이 MNG의 실패에서 도대체 뭘 배운 건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2. 웹킷이 구현하면 심지어 그게 HTML5에 들어 가지 않더라도 상당한 수의 사용자한테 먹히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webkit- 접두사는 실험적인 기능을 위해 사용하는 것인지라 웹킷 개발팀 마음대로 바뀌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예로 그라디언트가 있는데, 대부분의 CSS3 그라디언트 생성기가 뱉어 내는 걸 보면 다른 브라우저 벤더 별로 한 줄씩 있는 반면 웹킷은 두 줄(-webkit-linear-gradient-webkit-gradient)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Spelt Number to Decimal: 제작 일기​

이번 주 초에 올린 Spelt Number to Decimal, 즉 “a hundred” 같은 걸 “100”으로 바꿔 주는 프로그램은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코드 골프였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반응도 이전 Brainfuck 인터프리터 때보다 더 좋고(음… 설명을 써 놓아서 그런 건가?) 이번에는 내가 직접 레딧에 올렸기 때문에 카르마도 적절히 획득하고(…) 코드에 대한 피드백도 이전보다는 좀 더 활발한 게 괜찮았다. 하나 아까운 점은, 처음 공개 뒤에 십 수 바이트를 줄일 수 있다는 걸 발견해서 후다닥 고쳐야 했다는 것이랄까.

보통 코드 골프 글은 (영어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영어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프로그램의 경우 여러 가지로 삽질을 했기 때문에 글 하나로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다. 그러하니 2개 국어 저널이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하나는 영어, 하나는 한국어로 쓰고, 한국어 글은 영어 글에 없는 새로운 내용을 넣어서 한국어 독자에게 좀 더 보너스(?)를 주도록 하겠다. 코드 골프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괜찮은 내용이 될 것이다. 아, 코드를 다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코드를 이해하고 싶다면 기본적인 코드 골프 테크닉은 알고 있을 필요는 있다.

인터넷 보존주의자의 넋두리​

나는 보존주의자이다. 다만 보통 보존주의자라고 말할 때는 역사적인 유물들의 보존 같은 걸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런 쪽이 아니라 인터넷 상의 자료들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물론 역사적인 유물의 보존 또한 흥미진진한 주제이기는 하지만(《닥터 후》가 보존되는 과정을 보면 정말 경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내 직업도 그렇고 인터넷 상의 자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도 그렇고 해서 이 쪽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오늘은 이 얘기로 좀 길게 글을 써 보겠다(아 논문 써야 하는데).

민족이란 이름 아래​

나는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민족주의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민족, 나아가서 그와 비슷한 또는 동등한 개념으로 종종 인식되는 국가의 존립을 위해 어느 정도의 민족주의를 용인해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국 꽤 많은 국가들은 민족주의의 이름 아래 다른 민족을 가지고 별의별 짓을 하게 마련이라, 이걸 극복할 현실적인 대안이 당하는 민족을 일시적이나마 결집시키는 것 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물론, 구체적인 방법은 한국의 독립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 굉장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종종 이 갈등이 민족주의를 와해시키는 요인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근데 웃긴 건, 그렇게 해서 국가가 형성된 다음에 그 국가가 — 종종 역으로 —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삽질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최근 몇 년 간의 짐바브웨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대강 얘기하자면 독립 운동으로 권력을 잡은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백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농토를 강제로 재분배하는 정책을 펼치다가 경제를 말아 먹은 덕택에 발생한 것이다. 다른 예를 들면 한국이 독립 후에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친일 청산”이라는 이름의 삽질도 있는데, 단지 일제 시대의 흔적이라는 이유로 역사적인 건물들을 제거하고, 친일 행적이 있는 주요 인물들을 부관참시를 하는 등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그냥 민족주의만 가지고 쇼를 하는 것이다. 친일 행적을 한 건 역사적인 사실이므로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이지만 부끄러운 역사는 역사가 아닌가? 역사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그 역사의 진실성은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결국 누구나 손을 대긴 하지만, 적어도 적게 하려고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은가?) 조선총독부가 지은 건물이든, 친일 행적이 있는 인물이 지은 곡이든, 더 이상 일제 시대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될 일이지 왜 그걸 깨 부수려고 하는 건지, 나는 이걸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 말고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아까 전에 말했듯 지나친 민족주의는 종종 다른 민족(이라는 게 있다면…)을 억압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단순히 생각해 봐도 히틀러는 독재로 성장한 게 아니라 파시즘에 매도된 독일 민중들의 힘을 업어 성장한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버리는 것이 사회에 훨씬 이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단일 민족이라는 미신은 깨진지 오래고, 한국이 민족주의가 절실히 필요할 정도로 국가적 위기에 빠져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이제는 죽은 민족주의의 망령을 (좌우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이 악용하는 게 사회적으로는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국가는 현실적으로 버릴 수 없어도, 민족은 이제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트위터에서 누가 이런 동영상(주의: 자동 재생됨)을 뿌린(?) 적이 있다. 굉장히 웃긴 내용이면서도 내용이 심오한데, 찾아 보니까 3 Idiots라는 인도 코미디 영화에 나온 장면인 것 같다. 근데 위키스포일러사전에서 내용을 확인해 보니까 스토리가 전혀 코미디같지가 않은데(…) 의외로 괜찮아 보인다.

동영상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공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교수가 “기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자 다들 책에 있는 내용만 달달 외워서 말하는데 (그리고 교수는 그걸 보고 훌륭하다고 한다) 란초라는 한 학생만이 그걸 굉장히 잘 풀어서 말했다가 내용 안 외워서 말한다고, 교수의 노여움을 사서 강의실에서 쫓겨나자 나가는 척 하다가 교수를 역으로 관광시키는 훌륭한 내용이다. 룸메가 이 내용을 보더니 자기 교수님 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다고 리트윗을 하는데, 아… 나도 그 생각으로 리트윗한 거에요.

어쩌면, 란초가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은 모두 기계라고 할 수 있다”라고 풀어서 정의한 것에 대해서 교수가 “자세히 말할 것”을 요구한 게 아니라 “그럼 기계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를 요구했다면 수긍이 갈 뿐만 아니라 괜찮은 교수법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란초는 원래의 두리뭉술한 정의를 변호하기 위해서 자동차, 계산기, 그리고 심지어 지퍼까지도 기계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그게 맞는 말이지 않는가? 심지어 인간의 이족 보행이나 자연 상에서의 물의 순환 일부까지도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당연하겠지만 그런 류의 광의의 기계를 물어 보는 것은 아닐테니까 제대로 하려 했다면 그 정의를 좁히는 — 즉,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기계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물어 보는 —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기계의 정의 씩이나 물어 보는 걸로 봐서 저 내용은 분명 첫 수업일텐데, 첫 수업은 이 강의가 도대체 뭘 다룰 것인지, 그리고 그게 어떤 맥락에서 중요한지 학생들에게 설득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다소 철학적인 문제긴 해도 저런 류의 질문을 통해 학생들에게 “아, 이 강의는 중요한 걸 배우는구나!” 내지는 “이 강의가 끝나면 어떤 걸 할 수 있게 되겠구나” 류의 동기 부여를 시켜 줄 수 있다면, 첫 수업은 그런 설득 작업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영화에 나오는 저 교수가 그런 노력을 했더라면 란초가 그렇게 빡치진 않았겠지.

비단 기계공학 뿐만 아니라 전산학, 수학, 과학, 철학, 인문학 등등 모든 분야에서 그런 류의 질문을 던질 수 없다면 그 학문은 아직 잘 정립되지 않은 거라 생각한다. 난 전산학을 전공했으니 이 쪽만 얘기하면, 예전에 몇 번 “전산학은 계산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계산이 단순한 수식 계산 따위는 아니다 — 오히려, 따지고 보면 계산 아닌 것이 없다. 사람들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수많은 종류의 계산, 이를테면 대략적인 최단 경로를 찾는다거나, 버스 번호 같은 특정 물체를 시각으로부터 인식한다거나, 이족 보행을 위해서 근육을 얼마나 수축시키고 이완시키고 할질 결정하거나 하는 수많은 일들을 (무의식적으로) 해 내는데 이것이 곧 계산이다. 고로 이런 류의 일들을 기계적으로 하게 하고 싶으면 전산학(+ 소프트웨어 공학)이 안 들어가기가 힘들다. 단적인 예로, 기계적으로만 이루어졌을 것 같은 자동차도 현재는 소프트웨어 비용이 전체 비용이 반 가까이 된다는 걸 생각해 보라. 전산학자들은 여기서 좀 더 나아가서 여러 종류의 계산들을 추상화하고 분류하여 그 성질을 연구하고, 그 한계까지 연구하면서 “계산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좀 더 잘 대답하려고 애쓰고 있다. 음… 뭐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이런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만.

다시 말하지만, 어떤 분야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이런 내용을 설득시키거나 자기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의 머리 아픈 전공 내용을 비춰 주는 등불 같은 것이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코미디 영화에서 다시금 깨달은 것 같다. 언제 한 번 찾아서 봐야 겠다. (한국에서 개봉한 적이 있나 이거?)

현명한 기술 수용​

최근 몇 년동안 내가 스마트폰이 없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뭐 결국 계기가 생겨서 사긴 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얼리 어답터(선각 수용자)로 분류되기에는 너무 반응이 늦다. 기껏해야 전기 수용자1거나 종종 후기 수용자가 될 정도? 세 개의 운영체제를 쓸 정도로 기술적 범위가 넓은 사람 치고는 업데이트도 자주 안 한다: 나는 윈도 XP 이후의 운영체제를 데스크탑으로 쓴 적이 아직 없고 (다만 이건 아직 윈도를 깔만한 머신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머신이 생기면 아마 7을 깔 것이다) 맥도 10.5 다음 버전으로 업데이트하길 거의 포기한 상태이다. 아마 지금 상황을 볼 때 새로 산 넥서스 원도 지금은 최신 버전이긴 하지만 프로요 다음 버전 나오면 한참 뒤에 업데이트할 것이 거의 명확해 보인다.

내가 기술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기술은 순식간에 다른 기술로 대체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리 어답터들을 보면 새 기술이 나올 때마다 와아- 하고 몰려 나가는데 이게 참 웃긴 것이다. (물론 애플 같은 회사가 이런 얼리 어답터들을 굉장히 잘 써먹는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좀 싫다.) 애플 얘기 했으니까 이걸로 예를 들자면, 아이폰 3GS 나오면 다음에는 아이폰 4 나올 거고 그 다음에는 아이폰 5? V? X? 뭐 어쨌든 뭔가가 계속 나올 것이고… 물론 새 버전은 이전 버전보다 뭔가 더 좋은 것이 있겠지만 (해상도가 좋아지긴 했다더라) 솔직히 말해서 난 아이폰 새 모델 나오는 것에 연연해야 할 정도로 변화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도 애플 제품 쓴지 4년째 되어 가고 거기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크기의 변화가 쌓여서 나에게 직접 와닿지 않는 한은 변화에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 기술 수용 모델은 배치(batch) 모델이다. 사람들이 충분히 경험해서 그 장단점이 뚜렷하게 보이고, 그 중에서 장점이 충분히 커 보일 때 비로소 기술을 수용한다. 일반 사람들보다는 여전히 좀 빠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중간 쯤에 위치하게 되는 셈. 내가 배치 처리를 쓰는 대부분의 일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실시간으로 할 필요는 없고 언젠가, 어느 적절한 주기로는 해야 할 일에 적용되는데, 이를테면 쓰레기 버리기2라거나 메일 확인(요즘은 주기가 좀 짧아지긴 했는데…)이라거나 이런 일이 여기에 포함된다. 기술 수용도 굳이 이렇게 안 할 이유가 없다.

내가 기술 수용을 배치로 하는 데는 사용자화(customization)도 원인이 크다. 물론 친숙한 인터페이스가 다 직관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한 인터페이스를 딱 정해 놓고 사용자가 그걸 뜯어 고치게 된다면,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이 좀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터페이스의 직관성은 초기의 학습에 영향을 주는 것이지 그 후의 지속적인 사용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직관성이 높지만 그 다음에 효율이 높아지는 속도가 떨어지는 인터페이스도 꽤 존재한다(맥을 생각해 보라). 가장 좋은 인터페이스는 무울론 직관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사용 효율을 높여 주는 인터페이스고, 이를테면 구글 검색이 실제로 그런 경향이 있는데3 이런 건 정말 엄청난 테스트와 삽질을 통해 만들어지는 거라 보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처음 직관성과 그 다음의 효율을 적절히 분배해서 현재 사용하는 솔루션과 비교하여 전환 여부를 결정하는데… 아는 사람은 알지만 나는 온갖 것들을 사용자화하기 때문에4 한 번 최적화된 솔루션을 고치는 것 자체가 쉽진 않다. 새 기술이 나왔다고 그 기술로 즉각 전환한다면, 나는 나에게 최적화된 뭔가를 시도할 엄두도 느끼지 못 할 것이다. 내가 다른 것들을 거의 다 제쳐두고 넥서스 원을 산 이유도 사용자화가 90%였다. 절대 학교 내 KT 매장에서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고…

뭐, 기술에 좀 열광하는 게 (나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얼리 어답터가 아예 없다면 그 기술의 미래는 없으니까. 하지만 무엇이 당신에게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 새 기술로 바꿨을 때 얻는 이득이 잃는 것보다 충분히 큰가?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왜 새 기술로 바꾸는 것이 좋은 생각이 아닌가”를 앞에서 몇 문단으로 써 봤다. 새 기술에 대해서 이 정도의 논거도 제시할 수 없다면 (기술을 말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걸로 뭐가 훨씬 더 좋아지는지를 설명하란 말이다) 기술이 당신을 자유케 하는 게 아니라 기술이 당신을 노예로 만들 것이다.


  1. 혁신의 전파 모델에 따른 것. 얼리 어답터 다음으로 기술을 수용하게 되는 첫 50%의 사람들. 

  2. 음식물 쓰레기처럼 실시간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아닌 이상 난 쓰레기를 굳이 실시간으로 쓰레기통에 갖다 넣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다. 아니, 대놓고 말하자면 무슨 요일에 무슨 종류의 쓰레기를 갖다 버리자 하는 것 자체가 배치 처리이다. 그런데 집에서는 이걸 보고 뭐라 뭐라 그런다. 윽. 

  3. 무슨 검색어를 입력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검색 속도에 큰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구글 인스턴트를 내놓는 걸 생각해 보라. 

  4. 윈도에서는 많이 쓰는 프로그램들은 한 글자 또는 두 글자 커맨드로 실행되도록 고쳤고, 맥에서는 기본 단축키가 없는 것들 중 필요한 것들은 모조리 추가했으며 (그래서 다른 맥에 가면 버벅인다), 리눅스도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는 거의 대부분 손을 봤다. 또한 크롬도 자주 가는 수십여개의 사이트 및 서비스들은 모두 한 두 글자 키워드가 매핑되어 있고, Vim이야 수백줄짜리 .vimrc 쓰고 있으며, 심지어 최근에는 넥원 브라우저 시작 페이지를 로컬 파일 시스템의 커스텀 페이지로 교체했다. (그 큰 스크린을 구글 검색에만 쓰는 건 아깝지!) 


텀블러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