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9일 일의 사분면
조금 생각해 봤는데, 나는 모든 일을 네 종류로 나누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직업이나 생활에 관계된 일과 그렇지 않은 것, 그리고 각 분류 내에서 주가 되는 일과 부가 되는 일들. 종종 성공을 위해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가지고 비슷하게 네 분류로 나누는 것도 볼 수 있는데 나는 성공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게 나누지는 않는다(직업이라도 하고 싶은 일이 될 수 있고, 놀이라도 해야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각 분류에 속하는 일은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 직업에 관계된 주가 되는 일: (현재는) PL 연구.
- 직업에 관계된 부가 되는 일: 조교 일과 졸업을 위해서 들어야 하는 수업들.
- 직업에 관계 없는 주가 되는 일: 보통 삽질이라고 농담삼아 부르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들. 시작 후 완료까지 이틀 이상 걸릴 일들은 거의 다 여기에 속하는 것 같다.
- 직업에 관계 없는 부가 되는 일: 저널을 쓴다거나, 코드 골프를 한다거나 등등.
이렇게 나눠 보면 내가 각 분류에 속하는 일을 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상당히 설명되는 것 같다. 주가 되는 일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되는 경우가 드물고 보통 때는 진행이 더디다가 어느 순간 영감을 받아서 확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부가 되는 일은 그런 부하가 덜하기 때문에 보통 주가 되는 일이 잘 안 풀리면 하게 되고, 사실은 주가 되는 일과 부가 되는 일 사이의 태스크 스위칭 비용이 매우 높다(심하면 1주일동안 주가 되는 일을 못 할 수도 있다). 직업에 관계된 것과 관계되지 않은 것은 순전히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나누기 위한 것이므로 나는 그다지 구분을 하지 않지만, 보통 사람들은 공적인 쪽을 더 우선시해 줄 것을 바라게 마련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최근 들어 1번 분류에 속하는 일들이 갑자기 진행이 더뎌졌기 때문이다. 뭐 첫 논문 쓸 때도 만만찮게 게으름을 부리긴 했지만 현재 상황을 곱씹어 보니까 이건 게으름이라기보다는 전반적인 슬럼프고, 그 원인은 역설적으로 2번 분류에 속하는 일들의 압박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 조교 일이나 수업에서 프로젝트를 한다거나 하는 일(2번 분류)을 많이 하게 된다.
- 마찬가지로 부가 되는 일인, 풉;을 쓴다거나 IRC를 한다거나 하는 일(4번 분류)도 함께 하게 된다.
- 부가 되는 일을 많이 하게 되므로 주가 되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집중력은 상대적으로 줄어 든다.
- 그러므로 본래 해야 할 연구(1번 분류) 또한 잘 되지 않게 된다.
이 논리는 사실 보통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많으니까 연구를 못 하는 거야!”라는 논리보다 복잡하기만 하고 똑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한 가지 항목을 더 추가하면 상황이 달라지는데, 바로:
- 또한 대부분의 프로젝트들(3번 분류) 역시 잘 되지 않게 된다.
흥미롭게도, 최근 들어서 뭔가 의미가 있는 삽질을 의도적으로 하려고 무단히 애를 써 봤는데 어떻게 잡은 프로젝트마다 전혀 진행이 안 되거나, 하루가 지나면 바로 의욕이 추락하는 상황이 생겨서 좀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귀차니즘 때문에 일정 비율은 자동으로 필터링되지만, 문제는 최근 4개월간의 모든 프로젝트가 이렇게 되어 버렸다는 거다.) 처음에는 그냥 바빠서 모든 프로젝트가 자동으로 장기 프로젝트화되어서 귀차니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앞의 모델을 가정해 보니까 단순히 바쁜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바쁘냐가 전반적인 컨디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작년 8월에 논문 마무리할 때랑 비교하면, 그 때는 나름대로 주가 되는 일과 부가 되는 일(당시에는 유비트…)의 배분이 잘 되었던 것 같다.
뭐, 이 모든 것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하다. 주가 되는 일을 잘 하려면 부가 되는 일, 특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들을 최대한 덜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부가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들은 (필연적으로 시간 제한이 되기 때문에) 별 영향을 안 미친다는 것. 그래서 슬슬 논문을 써야 할텐데 이렇게 저널 글1을 쓰고 있는 것인가….
-
그리고 최근 저널에 글을 안 쓰는 경향으로 봤을 때 저널에 글 쓰는 일은 슬슬 4번 분류에서 3번 분류, 즉 주가 되면서 직업과는 관계 없는 일로 재분류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