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꿈의 하드웨어​

이 동네에서 유명한 사람들한테 무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쓰는지(만!) 물어 보는 인터뷰인 The Setup에 보면 “당신이 원하는 꿈의 환경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란이 있다. 여기에 사람들이 답하는 걸 보면 참 재밌는데, 어떤 사람은 완벽한 사운드 시스템을 갖고 싶다고도 말하고,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네트워크 상에 있는 환경을 원한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꼭 컴퓨터만을 원하지는 않는 경우도 있다. 가끔씩 은근슬쩍 자기 의견이나 자기가 만든 제품을 집어 넣는 경우도 볼 수 있고, 아예 때려쳤다는 얘기도 보인다. 물론 이 인터뷰 중에서 가장 황당한 것은 아마도 _why의 답변이리라.

나의 경우 옛날에는 컴퓨팅 환경을 심각하게 많이 신경쓰는 편이었지만, (운영체제 3개를 함께 쓰는 입장에서는) 워낙 가지각색의 환경을 함께 쓰다 보니까 각 환경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많이 준 것 같다. vim 설정 같이 모든 환경에서 일관되게 쓰는 툴은 여전히 신경을 많이 쓰긴 하지만 이건 점진적으로 고칠 수 있는 거니까 사실 큰 문제는 없기도 하다. 다만 꿈의 환경이 아니라, 만약 내가 가지고 싶은(또는 세계가 이걸로 뒤덮였으면 하는) 꿈의 하드웨어가 있다면 있긴 한데 생각난 김에 여기에 대해서 간략히 써 놓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꿈의 하드웨어는 이렇다. 기본적으로는 접은 상태에서는 10인치 넷북과 비슷한 크기에 무게는 1kg를 넘지 않아야 한다. 다만 편 상태에서는, 편 면 전체가 디스플레이이자 입력 장치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완전히 펴면 15인치 정도에 상당하는 화면이 되는 것이다. 입력 장치는 내 생각의 핵심인데, 화면에 완전히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터치 스크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물론 다점 멀티 터치가 지원되어야 한다) 화면 자체가 모양이 변형되어 촉감을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따라서 보통 사용하는 키보드는 스크린 키보드로 구현하되, 어디를 눌러야 할 지는 스크린 키보드의 각 키 위치의 화면이 물리적으로 변형되어 화면을 굳이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변형의 정도나 변형의 세밀도는 생각보다 클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 좀 더 쓸모가 많으려면 세밀도가 높을 필요가 있다. 점자 디스플레이 같은 형태로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이 기기를 두 번 접는 것도 가능했으면 좋겠지만 이 기능은 내가 원하는 기능의 논점을 벗어 나므로 생략한다.

이 하드웨어는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이상적인 조건을 만족한다:

  • 최소한의 공간으로 최대한의 표시가 가능하다. 터치 스크린이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디스플레이와 입력 장치가 통합되어 있어서 디스플레이를 최대화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쿼티 자판이 스마트폰에 달려 있어도 화면은 컸으면 하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 아닐까?
  • 그러면서도 터치 스크린의 가장 큰 문제—tangibility—를 해결할 수 있다. 나는 터치 스크린이 “익숙해지면 잘 쓰게 된다”라는 주장에는 전혀 동감할 수 없는 것이, 아무리 터치 스크린을 쓰더라도 자주 쓰게 되는 몇 가지 버튼은 결국 물리적인 버튼이 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심지어 아이폰조차도 홈 버튼은 있다1). 이 말은 안정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얻으려면 뭔가 만져서 느낄 수 있는 물리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진동으로 피드백을 하려는 시도가 꽤 있긴 하지만, 이건 피드백 치고는 너무 부족하다(입력이 감지되기 전에 입력이 틀렸음을 인지할 수 없다).
  • 물리적인 키보드를 구현할 수 있다. 나는 마우스는 근시일 내에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지만 키보드는 텍스트를 입력하는 데 그 효율성이 거의 최적에 가깝기 때문에2 완전한 키보드를 넣기 힘든 기기 빼고는 살아 남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물며 넷북 정도 크기의 기기인데 키보드나 그와 비슷한 입력 장치를 기대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 다른 사람한테 비쳐 보이지 않는다. 투명 스크린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이런 문제를 종종 지니고 있는데, 물론 화면 뒤에 있는 물체를 보여 준다거나 하는 기능이 있으면야 좋겠지만 반대쪽에서도 디스플레이가 보이는 것은 사생활 문제가 되기 십상이다. 애초에 들고 다니면서 쓸 장비라면 다른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보지 않게 될 최소한의 장치는 되어 있어야 한다.

종종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두뇌 인터페이스(…)나 모든 것이 스마트폰이 되는 세상은 그다지 꿈꾸고 싶지는 않다. 글쎄, 특이점이 생각보다 빨리 오면야 이 모든 논의가 필요 없을 지도 모르겠으나, 그게 아니라면 두뇌 인터페이스는 좀 그런 것 같고(다른 건 몰라도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완전히 갈아 엎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스마트폰이 되는 것은 화면 크기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외부 디스플레이에 연결하는 것 역시 그렇게 내키지는 않는데다가 스마트폰 같은 이동 장비가 갖고 있던, 다른 사람한테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사라지게 된다. 요컨대 내가 제시하는 하드웨어는 들고 다닐 수 있는 기기 중에서는 가장 큰 화면을 제공하면서도, 그러한 기기가 흔히 가지고 있는(아마도, 의도치는 않았을 법한) 특성을 대부분 가지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필요한 기능—특히, 키보드—은 다 가지고 있는 그런 하드웨어라 할 수 있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낮겠지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1. 기술적으로는 두 가지 기능을 한 버튼으로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버튼의 갯수나 버튼으로 구현되는 기능의 갯수는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2. 다만 키보드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남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약간 부정적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키보드”는 “손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 접근 가능한 다수의 물리적인 버튼으로 동작하는 입력 장치”를 가리킨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텀블러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