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리듬게임 인생 (1)​

인생을 살면서 아직도 내가 왜 이 쪽에 꽂혔는지 도통 모를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프로그래밍 언어이고 또 하나는 리듬게임이다. 프로그래밍 언어 얘기는 꽤 많이 얘기했었으니 이번엔 도대체 내가 왜 리듬게임을 (아직도) 하고 있는지 얘기해 보자.

펌프잇업

리듬게임을 시작한 것은, 내 생각이 맞다면, 펌프잇업이 처음 나올 때니까 1999년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때와 비슷하다. 만약 그 때의 허접한 웹사이트를 뒤져서 찾아 낼 근성과 운(크롤링되었을 확률이 적으므로)이 있다면, 당시 내 관심사가 펌프와 포켓몬스터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 포켓몬스터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지고 펌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는지는 지금도 알 도리가 없다. 게임을 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언어의 장벽이 그 원인이 아닐까, 하고 짐작만 할 따름이다.

아무튼 나는 펌프에 미쳤다고 할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즐겁게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펌프는 세컨드 플로어였는데, 2년 뒤 엑스트라가 나올 때까지 꾸준히 하긴 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엑스트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꽤 어려운 곡으로 취급되었던 Mr. Lapus는 깨지 못 했던 것 같고, 엑스트라에서 추가되어 현재까지도 여전히 수록되어 있는(몇 곡 없다) Chicken Wing은 펌프를 그만 둘 즈음에 내가 좋아했던 곡이었다. 얼마나 좋아했냐 하면, 이 곡을 리믹스해서 커스텀 채보를 만들어 배포한 적이 있다(여기에 대해서는 후술).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 때의 펌프는 전국적인 인기를 누릴 만한 자격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들 알듯이 펌프는 DDR의 영향을 꽤나 받았고(법적인 얘기로 넘어 가면 좀 더 복잡하지만 별로 여기서 다루고 싶지는 않다) 게임 플레이 또한 그로부터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DDR이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댄스를 좀 더 내세운 반면 펌프는 꼭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간혹 펌프 자체의 게임 플레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게임을 창출해 내는 퍼포머들이 나와서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긴 했지만, 그런 사람들을 빼면 펌프를 하던 사람들은 그다지 춤을 추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음악을 듣고 놀고 싶은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오락실에 펌프를 보면 여전히 그냥 놀고 싶은 사람들—주로 커플—이 그저 그런 난이도로 게임을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옛날에 오락실이 동네마다 있던 시절에는 그런 사람들이 넘쳐 났다는 얘기다.

펌프에 대한 내 기억은 엑스트라에서 갑자기 끊긴다. 그 이유는 어처구니 없게도 중학교 시절의 친구들의 괴롭힘 때문이었는데, 안 그래도 학교에서도 짜증나게 하는 판에 자주 가는 오락실에서 우연히 만나자 게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에서 방해를 했던 것이었다.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뒤에서 방해하는 녀석을 옆에 있던 에어컨에 쳐 박았고, 싸우던 도중 그 에어컨이 바닥에 쓰러지자 그 녀석들은 도망가 버렸다. 그런 경험을 겪었는데 오락실이 더 이상 편안한 장소일 수는 없었고, 얼마 안 지나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면서 결국 나는 펌프에 대한 관심을 끊고 만다.

킥잇업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지만, 당시에도 어느 정도 난이도가 되는 채보는 사람들의 제보를 통해 재구성되어 인터넷 상에 떠돌아 다녔다. 펌프의 경우 이것만 전문으로 하는 사이트도 있었고(도메인 이름이 네 글자였던 모 사이트가 있는데 나도 더 이상 정확한 이름을 기억하지 못 한다), 뭔가 움직이는 걸 보고 싶다는 염원 때문에 시뮬레이터가 생기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시뮬레이터들이 현재의 PC용 공개 리듬 게임의 발판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킥잇업이라고 상황이 다르지는 않았다. 본래는 펌프의 시뮬레이터로 시작해서—한 때는 펌프 데이터를 직접 돌릴 수도 있었으나,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었다—얼마 안 지나 자작곡에 자작 채보를 집어 넣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들며 공개 리듬게임의 입지를 다졌다. 물론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펌프를 손으로 한다”, 내지는 손펌프를 할 수 있다라는 얘기를 듣고 시작하는 게 보통이었고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서로의 자작곡을 모아서 하나의 합본, 즉 팩으로 내는 경우가 생겨 났고, 나름 펌프와 킥잇업을 열심히 했던 나 또한 뭔가를 만들고 싶었음은 물론이다.

예나 지금이나 음악에는 재능이 없는 나한테 킥잇업용 데이터(KSF라 한다)를 만들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리믹스. 나는 (아까 말했지만) 당시 좋아했던 펌프 곡인 Chicken Wing과, 킥잇업 관련 사이트에서 자작곡을 올리던 어떤 분의 곡을 골드웨이브로 여기 저기 기워 붙여서 기괴한 리믹스를 만들어 냈다. 물론 그냥 기워 붙인 것은 아니고, BPM을 맞추고 박자를 맞추는 정도의 수고는 했다. (구간 별로 속도가 달라지는 변속곡을 만들 수 있긴 하지만, 당시 KSF 포맷에서 변속을 구현하려면 상당한 삽질을 해야 했기에 별로 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제 딴에는 어렵게 한다고 채보를 뒤뒤 꼬아 놓았는데, 당연하지만 발로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8박으로 발판 3개를 동시에 누르는 구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어찌 저찌 해서 이 곡이 어떤 팩에 수록은 되었던 것 같다. 혹시 이 곡 기억하시는 분은 이제 돌을 던지셔도 좋다.

킥잇업은 나한테 이런 종류의 게임이 한 둘이 아님을 알려 준 계기이기도 했다. 펌프에 밀려 한국에서는 듣보잡이었지만(안다미로가 의도적으로 DDR의 퍼블리싱을 저지하려 했다는 얘기도 있다) 여전히 일본에서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DDR이라거나, 킥잇업 스킨을 만드시는 유명한 분이 어느 날 손펌프의 극한을 추구하기 위해 노트 모양을 단순화하여 스킨을 드럼매니아 모양으로 만들면서 알게 된 드럼매니아라거나. 참고로 그 분은 스킨 테스트 용으로 무려 Right on Time을 킥잇업 더블 모드로 이식했는데, 이게 참 치기 힘든 채보였다.

킥잇업의 끝 또한 내가 펌프를 접은 이유와 비슷하게 극적인데, 킥잇업의 개발자가 안다미로에 입사하면서 개발 의지를 상실해 버려 킥잇업의 업데이트가 중단되어 버렸다. 후에 듣기로는 이 개발자가 뒤에 펌프 계열 게임에 사용되는 리눅스 커널을 수정하여 리버스 엔지니어링에 상당한 고난을 초래하였다고 하니, 개발 능력은 꽤 하지 않았나 싶다. 킥잇업의 개발 중단과 함께 펌프 또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킥잇업 사용자의 수는 계속 줄어 갔고, 펌프보다 길긴 했지만 내 흥미 역시 길게 지속될 수는 없었다. 후에 킥잇업 사용자는 (이것도 꽤 된 일이긴 한데) 그와 호환되는 게임인 다이렉트무브로 완전히 옮겨 갔고, 여전히 KSF를 만들고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 수효는 옛날보다는 훨씬 적다. 지금 생각하면, 킥잇업은 꽤 흥하긴 했지만 전환점은 넘지 못 했던 것 같으며, 아무도 그 전환점이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 했던 것 같다(BMS는 어떻게든 넘겼고, 결국 살아 남았다).

캔뮤직·오투잼

처음 리듬게임을 시작할 적에 포켓몬스터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그라들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포켓몬스터를 대체하는 관심사는 그 뒤에도 여럿 나타났는데, 킥잇업을 접을 즈음의 대응되는 관심사는 판타지 소설이었다. (《사이케델리아》를 아시는지?) 내가 다녔던 판타지 소설 커뮤니티는 사용자 수로는 참 오묘한 위치에 있어서, 사람이 아주 적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북적이지도 않아 판타지 소설은 부요 친목질이 주가 되는 흔한 상황이 벌어졌다. 몇 년 뒤 그 커뮤니티가 (아마도) 운영자 사정으로 해체될 때, 거기 있던 사람들 일부가 나가서 새로운 커뮤니티를 세웠고 나도 그 일원 중 하나였다. 그 커뮤니티는 지금도 남아 있고, 심지어 내 서버에서 운영되고 있지만, 이제는 새 글이 1주일에서 한 달 단위로 올라 오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 있다(제로보드 4도 여전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친목질은 독에 가깝지만, 그 커뮤니티처럼 아예 신규 인원이 없을 법한 상황에서 친목이 유지될 경우 본래의 목적은 잃어버릴 망정 친목질로 인한 폐해는 보통 발생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비교적 오랫동안 같은 사람들과 친목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중에는 어느 날 불쑥 캔뮤직을 해 보라고 나를 꼬셔서 지금까지 리듬게임을 하게 만든 사람도 있다. 아마 여시괭이라고 써 두면 누군가 알아 볼 것이다.

캔뮤직, 또는 그 전신인 보스홀(VOSHALL)은 아마도 한국 최초의 상용 온라인 리듬게임으로 보면 거의 맞을 것이다. 또한 온라인 리듬게임 중에서도 가장 기구한 역사를 지닌 것으로 유명한데, 개발사가 도산하면서 서비스가 날아가자 내부 개발자가 소스 코드를 들고 나와서 서비스를 재개하는 놀라운 행보를 보여 주기도 했다. 뭐 지금은 아는 사람만 아는 얘기가 되었지만. 아무튼 처음 캔뮤직을 접한 날, 나는 쉬지 않고 계속 플레이하다가 눈이 피로해지며 노트를 볼 수 없게 될 즈음에 그만 뒀는데 그게 세 시간이었다. 당시는 캔뮤직의 전성기였기 때문에 따끈따끈하게 나온 수많은 곡들을 플레이할 수 있었고, 도전할 만한 어려운 곡들도 꽤 있어 얼마 안 지나 나는 캔뮤직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이 때가 아마 2003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2003년은 또한 오투잼이 번성한 때이기도 했다. 캔뮤직이 즐겁기는 했지만, 뭔가 온라인 게임스럽지 않은 인터페이스(애초에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까)에 미디 음원이 좀 아쉽다 싶었는데 오투잼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게다가 캔뮤직과 게임 플레이 방법도 똑같았다.1 덕분에 캔뮤직에서 오투잼으로 넘어 가는 건 별 문제가 아니었고, 부분 유료화가 진행될 때도 나는 꾸준히 남아 있었다. 일단 Electro Fantasy라는 개념·극악곡의 존재가 많은 문제를 상쇄해 주었고, 어차피 그 정도 퀄리티를 가진 다른 리듬게임이 당시로서는 없었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지금 보면 캔뮤직과 오투잼은 온라인 리듬게임의 한 이정표를 찍긴 했지만, 상업적으로는 반짝 떴다가 사라진 안습한 게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캔뮤직은 개발사 도산 뒤에도 어떻게 운영을 하는 것 같아 보이고, 오투잼은 디제이맥스의 등장 이후 쇠퇴의 길을 걸어 가며 매니아층 위주로 개편되다가 결국 나우콤에 먹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두 게임 모두 내가 그만 둔 뒤로는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지만, 내 동생은 여전히 종종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어느 쪽을 보든 내가 나간 타이밍이 적절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 서글퍼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차회 예고

다음 글에서는 디제이맥스, BMS, 팝픈뮤직을 다룬다. 언제 쓸 지는 좀 보고…


  1. 이것이 표절인지 수렴 진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온라인 리듬게임은 필연적으로 키 충돌을 고려해서 게임 플레이를 정하게 되는데, S D F Space J K L 배치는 거의 모든 키보드에서 키 충돌이 거의 안 나는 얼마 안 되는 배치 중 하나였다. (요즘은 심지어 BMS도 이 배치로 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 뭐 나는 S D F J K L ;을 선호하긴 했다만. 


노트들

텀블러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