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분산형 백과사전 모델​

(본래는 몇 달 전에 Distributed Encyclopedia Model이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쓴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요즘 보면 보통 말하는 크라우드 소싱이라거나, 분산형 버전 관리 시스템(DVCS) 같이 많은 것들이 분산형 모델로 변화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워낙 온갖 것에 관심을 가지는 내 성격상 자연스레 분산형 백과사전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보통 사람이 편집할 수 있는 백과사전이라면야 위키백과가 유명하지만, 중앙 집중된 규칙(비교적 적은 편이지만)과 그 규칙을 존중해야 하는 편집자들이 있는데 이걸 분산되어 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 분산형 모델이 중요한가?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위키백과는 모든 주제를 다루는 일반 목적의 백과사전이지, 특정 주제에 특화된 백과사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키백과 문서들이 특정 주제에 익숙한 전문가가 쓴 문서들에 비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문제는 모든 주제를 다룬다는 특성상 “저명성”을 따지게 마련이지만 이 저명성은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위키백과의 본래 목적, 즉 인류의 지식을 모두가 자유로이 보고 고칠 수 있게 하자는 것에 비추어 볼 때 현재 위키백과의 저명성 기준(다시 말하지만 이 기준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은 이해가 가긴 하지만, 과연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저명하지 않은 주제들이 실제로 저명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른 특화된 백과사전들(이를테면 Wookeepedia 같은 거)은 위키백과에서는 저명성 부족으로 삭제될 주제를 잘만 담고 있으며, 사실 해당 백과사전의 목적 안에서는 충분히 저명성이 있는 것이다! 위키백과는 특정 기준에서는 충분히 저명한 많은 주제들을 놓치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인류 지식을 담는다는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 하고 만다.

한편으로, 위키 기반의 백과사전들은 여럿 존재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서로와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혹시 이러한 백과사전 사이트들 중에 다른 백과사전 사이트로 열심히 링크를 걸고, 반대로도 링크를 많이 받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옛날에는 인터위키랑 시스터위키라고 해서 위키 사이트들끼리 링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기능들이 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별 쓸모가 없었고 요즘은 그냥 무시되는 추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위키아에는 (미디어위키의 인터위키 기능으로) 비슷한 시스템이 있던 것 같긴 한데, 역시 그다지 사용되는 것 같진 않다. 게다가 사실은, 위키백과는 충분히 유명하고 저명성만 보장되면 문서 링크가 깨지는 경우도 그닥 없어서 링크하기 좋음에도 불구하고 백과사전 사이트들이 자기 사이트 안에 없는 문서를 위키백과로 링크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도 않다.

또 하나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사람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지는 백과사전 프로젝트는 커뮤니티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것은 관리하기 무진장 힘들고 그 규모가 커질수록 재앙으로 변해가기 마련이다. 위키백과 편집자들도 마찬가지인지라, 특정 주제의 문서에 기여를 하겠다는 단 하나의 공통점을 빼고는 서로 공통된 점을 찾을 수가 없다. 보통 커뮤니티 내에서 내분이 일어나면 그 커뮤니티가 아예 사라지거나 둘로 나뉘어 버리고, 내분이 일어나는 도중에는 새로운 사람이 유입되기가 쉽지 않아지는데, 백과사전 프로젝트 같은 경우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용자들이 프로젝트를 포크하는 게 보통 쉽지가 않기 때문에(위키백과의 경우 주기적으로 데이터베이스 덤프를 제공하긴 하는데, 이 역시 쓰기가 쉽지 않다) “원만한 해결”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건 위키백과 입장에서 보면 큰 손해라 할 수 있는데 사건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그걸 지켜 보는 사용자들 중에서도 회의감을 느껴 편집에 손을 놓는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하나 예를 들자면, 혹시 Conservpedia라고 들어 보셨는가? 이 곳에서는 위키백과가 보수주의적인 가치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로운 백과사전 사이트를 만들었지만, 기술적으로나 사용자 면으로나 위키백과를 포크하진 못 했고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망한 사이트가 되어 버렸다. 쌤통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께서는 만약 저 사이트가 보수주의적인 가치가 아니라 민주주의적인 가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포크를 하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시면 되겠다.

나는 이러한 점을 토대로 할 때, 위키백과 및 현존하는 위키 기반 백과사전 모델은 인류 지식을 담기에 매우 역부족이라고 본다. 물론 위키백과가 입증하듯, 인류 지식의 일부분을 담을 수는 있긴 하지만 그럼 안 담긴 나머지는 어쩌란 말인가? 따라서 이를 해결하려면 우리는 독립된 위키들이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하고, 기존 위키에서 포킹하는 것이 잘 지원되어야 하며, 또한 이러한 기능들이 잘 사용될 뿐만 아니라 권장되도록 체계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한 위키의 커뮤니티 크기는 최소화해야 하며, 어쩌면 한 사람만이 쓰는 “개인 백과사전”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커뮤니티는 (나같이 하드코어한 사람들이라면) 모든 글을 처음부터 쓸 수도 있지만, 커뮤니티가 관심을 갖고 있는 글만 쓰고 다른 글들을 다른 위키에서 참조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참조”는 링크와는 다른데, 이를테면 참조하고 있던 글이 있던 위키가 망하거나 해당 위키의 커뮤니티가 갑자기 이상해져서 글을 개판으로 만들거나 해도 참조하던 쪽에서는 전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고, 또한 위키 안의 역링크 기능처럼 어떤 위키에서 자기 위키의 글을 참조하는 다른 위키의 목록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라이선스 같은 기본적인 것에 동의만 한다면) 위키를 포크할 수 있어야 하며, 작은 위키가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포크로 인해 발생하는 트래픽은 최소화해야 한다—-아마도 위키 소프트웨어가 똑똑하게 동작해서 포크를 장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뭐… 아직 테스트를 해 본 것도 아니고 이 모델이 잘 작동하리라는 생각도 하진 않는다. 사실은 느슨히 연결된 수많은 위키들이 있을 때 어떻게 이 모델을 구현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영 해답이 보이질 않는다(이를테면 트래픽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DVCS를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적한 현재의 온라인 백과사전의 문제는 올바르다고 본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인류 지식의 저장이 중앙 집중된 메커니즘에만 의존한다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보는가?!


노트들

  1. arachneng posted this
텀블러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