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6일

사흘 전(2012-01-03)에 찍은 이 사진은 아마도 내가 3년 가까이 유비트를 하면서 가장 희열을 느낀 순간이었다. 유비트를 모르는 사람한테 이 사진의 가치를 설명하려면 “4,300회 플레이하면서 이 곡만 200회 넘게 했는데 처음 나온 기록”이라고 설명하면 대강 되겠지만, 유비트를 아는 사람이라면 더 듣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유비트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웬만한 곡은 S 찍는 건 어렵지 않고 좀 연습하면 웬만큼 악랄한 곡이 아니고서야 SS/SSS를 찍을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기록을 찍기 전까지는 S를 못 찍은 곡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에반스고 다른 하나는 에어레이드인데, 둘 다 난이도가 안드로메다로 넘어 가는 걸로 유명하지만 에반스는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난공불락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훨씬 인지도가 높다. 그리고 리듬게이머들 사이에는 에반스는 에어레이드와는 달리 외워도 난이도가 내려가지 않는다(…)는 악명이 자자하기도 했다.
앞에서 4,300회 플레이 중 200회가 에반스 (물론 EXTREME 난이도) 플레이라고 언급했는데 이 수치는 실제로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서 계산해 낸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난 2009년 6월 26일에 처음으로 이 악랄한 곡을 접한 이래, S에 다다르기까지 2년 반동안 22회나 기록이 찔끔 찔끔 갱신된 걸로 나온다. 특히 처음으로 A를 찍은 동년 11월 6일 이래 갱신 폭이 1만점을 넘긴 경우는 한 번 뿐이었다. 게다가 자료 중간에 열 달에 다다르는 긴 공백이 있는데, 이 공백동안 점수는 정확히 2천점 올라갔다(…). 이러니까 내가 애증이 넘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이 기간보다 훨씬 짧은 기간 사이에 레벨 10 호구곡(다소 개인차가 있긴 하다)으로 불리는 Russian Snowy Dance는 엑설을 찍을 뻔 했다….
에반스는 보통 크게 네 구간으로 나눈다. 첫 20여초간의 가벼운 손 풀기(퍼펙트 기준 ~16만 9천점), 회오리로 끝나는 45초간의 저속 구간(~44만 9천점), 그리고 답이 안 나오는 중반 폭타(~71만 2천점), 마지막으로 끝까지 답이 안 나오는 후반 폭타(~90만점)가 바로 그것이다. 네 구간은 구조가 서로 따로 놀기 때문에 한 구간을 잘 한다고 다른 구간을 잘 한다는 보장이 없는데(“그나마” 후반 폭타 일부는 중반 폭타의 변형이긴 하다), 내가 겪은 문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곡 패턴을 거의 외우지 않기 때문에, 올콤보를 노리기 위해서 곡에 맞춰서 외우는 케이스를 제외하면 구간 전체를 외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반스의 중반 폭타는 반엇박으로 동시 치기가 나오는 매우 흉악한 패턴이라서 몸이 외우지 않으면 비슷하게라도 치는 게 어렵고, 그래서 중반 폭타를 잘 치면 88만점, 못 치면 85만점(…)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그래도 200번 플레이해 보니까 자기가 처한 상황은 확실해져서, 회오리가 끝날 때까지 무조건 43만점(즉, 많아도 2만점 감점) 이상으로 플레이하면 적어도 A(85만점 이상)는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 운이 더 따라 주면 44만점대도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걸 가정했을 때 S를 받으려면 이 뒷구간에서 9만점 이상 깎이면 안 되기 때문에, 중반 폭타에서 많아도 6만점, 후반 폭타와 최종 게이지에서 많아도 3만점이 깎인다고 계산해야 했다. 아까 전에 퍼펙트일 때 점수를 생각하면 이건 중반 폭타가 끝났을 때 64만점 이상을 받은 뒤에 뒷부분을 최대한 잘 쳐야 한다는 걸 뜻한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꼼수가 등장했는데,
- 점수를 최대한 더 잘 받는 게 목표라면 잡다한 박자들을 덜 신경쓰고 4개짜리 동시치기를 제대로 치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실제로 에반스에서는 4개 동시치기보다 반박 빠르게 또는 반박 늦게 한 개짜리 노트가 나오는 패턴이 흔한데, 어차피 못 외울 거면 한 개짜리 노트를 버리는 게 점수에 유리하다.
- 중반 폭타 중간 쯤에 긁어서 퍼펙트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 부분은 다른 곳의 변형 엇박과는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딱 이 부분만 외우고 나머지를 일반적인 전략으로 처리하는 게 편했다.
- 중반 폭타와 후반 폭타 사이에 약간 쉬어 가는 부분은 무조건 콤보를 이어야 한다. 그래야 게이지를 최대한 올려서 후반 폭타가 좀 잘 안 되어도 최종 게이지에서 그만큼의 점수를 건져낼 수 있다.
- 후반 폭타의 중간 부분에는 점대칭으로 긁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실제로는 긁으면 절대로 올콤보를 할 수 없으나, 어차피 올콤보는 포기한 마당에 최대한 그럴듯하게 긁는 전략을 썼다.
결과적으로, 90만점을 넘긴 아주 운 좋은 플레이의 경우 회오리까지 44만 2천점, 중반 폭타까지 63만 5천점, 후반 폭타를 넘겼을 때 80만 6천점, 그리고 운이 좋게도 게이지가 거의 안 깎여서 최종 점수가 90만 3천점이 되었다. 이 전략으로 나올 수 있는 최대 점수에 가까울 것 같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나랑 비슷한 실력을 가진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회오리 이후의 폭타가 아니라 회오리 전에서 점수를 깎아 먹는 게 많았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폭타를 “보고” 어떻게든 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내가 특이한 게 아닌가 싶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내가 에반스를 S 못 넘긴다고 말할 때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님 실력에 S를 못 넘긴다니 흠좀무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하긴 그렇다. S가 넘어 가면 어쨌든 이 곡은 외워야 하는 곡이고, 만약 내가 처음부터 외우기 시작했다면 지금쯤 SS를 찍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다. 난 옛날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리듬게임은 결국 패턴화를 어떻게 하느냐에서 재미를 찾는 게임이라고 보아 왔다.1 리듬게임을 어느 정도 한 사람들이라면 노래를 들었을 때 절로 자기가 하는 게임에서 그게 어떤 채보로 나올 지를 상상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이유는, 기존의 리듬게임에서 그러한 종류의 음악이나 리듬이 그러한 채보로 나와 왔기 때문이다. 만약 패턴화가 불가능한 채보가 있다면, 그 채보에서 재미를 찾는 것은 기존에 리듬게임이 주던 재미랑은 다른 재미를 찾는 것이 될 것이다. 실제로 에반스는 안 하는 사람과 하는 사람의 차이가 극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예 에반스만 파고 다른 곡을 안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에반스 플레이어”라는 말로 부르기까지 할 정도로 이 곡에 파고 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난 에반스를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유비트를 플레이하는 사람이고, 일반적인 패턴화를 통해 재미를 찾고 싶지 에반스에 특화된 패턴화로 재미를 찾고 싶지는 않다.
비슷한 이유로, 아마도 나는 S를 못 찍은 마지막 곡인 에어레이드도 한동안 고생을 해 가면서 플레이를 할 작정이다. 에어레이드는 나같이 채보를 외우지 않는 사람한테는 에반스보다 더 어려운데, 곡을 구간 별로 분리할 수는 있으나 모든 구간이 어렵다(에반스는 회오리 앞뒤의 난이도가 확연히 차이가 나서 클리어 난이도가 생각보다 낮다). 하지만 에반스를 결국 S를 찍었는데 에어레이드라고 못 할 이유가 있겠는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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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게임은 음악의 “리듬” 요소를 극대화시켜 그로부터 게임 요소를 만들어 낸 게임이다. 그런데 리듬은 멜로디와는 달리 그 패턴이 덜 다양하니, 게임 요소를 만들 때는 패턴화된 리듬에 덧붙여 지루함을 덜기 위한 추가 요소를 통해 변화를 꾀하게 마련이다. 유비트의 경우 요즘은 너무 보편화된 것 같은 글자 패턴(…)이 한 예가 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