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1일 외래어와 외국어
[전략]
문제는 ‘포토스트림’이라는 이름입니다. 혹시 이 단어가 영어권 국가 사람들에게는 포토스트림의 작동 방식과 의미를 쉽사리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포토스트림을 한국에서는 ‘사진 스트림’으로 번역했는데 이걸로는 포토스트림이 ‘사진첩’과 다른 속성이라는 사실을 전달 받기 어렵습니다. ‘스트림’이라는 말에 익숙한 사람은 십중팔구 개발자일 가능성이 높기도 합니다. 사실 잠깐 생각해서는 마땅한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했지만 이 부분은 iOS5 출시 전에 좀 더 시간을 들여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름만 적당히 지었어도 사람들이 포토스트림을 사진첩으로 인식해 정리하려고 시도하는 불행한 일은 훨씬 줄어들었을 겁니다.
이거 보고 그냥 생각났는데, 한국어에서 “스트림”과 “스트리밍”은 다른 말이다. 전자는 한국어권에서 어떤 유용한 의미도 담지 않은 외국어이지만 후자는 음악이나 영상을 실시간으로 받으면서 본다는 의미로만 쓰이는 외래어이다. 아마 “스트리밍”을 보고 뭔가 흘러간다는 생각을 할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스트림”을 보고서 그 생각을 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본다. 사진이 흘러간다는 느낌이 안 드니 기능을 착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데, 차라리 stream의 뜻을 살리지 않고 옮겨간다는 느낌만 살려서 다른 말을 만드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른다.
“스트림”과 “스트리밍”에서 볼 수 있듯, 영어권에서 한국어권으로 외래어가 들어 올 때는 관련된 낱말이 들어 올 때도 있고 안 들어 올 때도 있다. 원래 낱말이 명사였고 그게 동사로도 쓰인다면 보통 해당하는 동사나, 명사와 동사가 겹쳐서 구분이 안 될 때는 동명사(-ing)가 함께 들어 오기 마련이다. (예: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반면 원래 낱말이 동사였을 경우 대응되는 명사는 거의 들어 오지 않고, 동사 대신 동명사가 들어 오는 경우도 흔하다. Streaming의 경우 본래 영어에서의 동사는 명사로부터 유추되는 뜻이긴 하지만, 한국인 중 누구도 명사로서의 stream에는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사와는 구분되면서 다른 뜻을 가진 동명사 streaming이 외래어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게 좀 심해지면 동사로 들어 온 낱말이 명사로 전용되거나 반대의 일도 일어날 수 있다(예를 들어 “makeup”이라는 낱말은 영어에서 동사로 전혀 쓰일 수 없지만 한국어에서는 “메이크업하다”라는 말이 정착되어 있다).
외국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잘못된 외국어 사용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 비판은 정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쓰는 것은 외국어가 아니라 외래어이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한국어에 있던 낱말만으로 소화할 수 없는 개념을 한국어로 들여 오기 위해 다른 언어의 낱말의 “의미”를 끌어 들인 것이지, 그 낱말이 그 언어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까지 끌어 들인 게 아니라는 걸 주의해야 한다. 반대로 외래어를 외국어에서 잘못 사용하는 실수만 범하지 않는다면 상관 없다(다행히 한국인들도 요즘은 얘기를 워낙 들었는지 외국에서 시도 때도 없이 fighting! 하진 않는 것 같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