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가명과 필명의 차이​

나는 내 실명을 공개하는 데 별 거부감을 느끼지 못 하는 사람 치고는 사용하는 필명1이 많은 편이다. 지금 주로 쓰는 lifthrasiir나 아라크넹 같은 이름 말고도 제한적으로 하지만 꾸준히 사용하는 필명(안타깝게도 여기서 말하기에는 좀 문제가 많은 게 있다)이나, 옛날에 아무 생각 없이 정했다가 지금은 묻혀버린 필명(문제의 ㅌㄲㄱ)까지 합하면 열 몇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필명이 많은 이유는 아무래도 상황에 맞춰서 새 필명을 만들기 때문인 게 강하다. 예를 들어서 프로그래밍을 할 때는 거의 대부분 lifthrasiir를 쓰고(옛날에는 이 역할을 ㅌㄲㄱ이 맡고 있었다), 좀 장난스런 글을 쓸 때는 아라크네/아라크넹을, 조용한 문맥(트위터 같이 글 별로 안 올리는 곳이나, 학술적인 곳이나)에서는 senokay를, 정말로 내 주장을 강조하는 글이나 기술 문서 같은 경우 내 본명을 쓰는 식이다. 어차피 조금만 찾아 보면 네 이름이 동일인을 가리키는 걸 쉽게 알 수 있을테니 신원을 숨길 목적은 아니고, 이 글이나 코드 등등이 어떤 시점에서 작성되었는지 무의식적인 힌트를 주는 목적이 더 강하다. 이 저널을 옛날부터 구독한 사람이라면 저널 옛날 이름이 “Arachneng on Everything”이라는 걸 알텐데, 이것도 이 맥락에서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 애당초 이 저널은 메아리에 완전히 포함시킬 목적으로 만든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지금이야 뭐 통합되었고 이름이 잘 숨겨져 있지만). 나 보고 왜 이리 필명이 많냐(…)고 묻던 사람은 이걸로 어느 정도 답변이 되었길 바란다.

뭐 나같이 필명이 넘쳐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이름은 필명이든 실명이든간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에 필명만 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척하거나 하는 사고는 매우 위험하다. 애당초 실명을 쓰지 않는 이유는 실명은 i) 보통 자기가 정한 게 아니고 ii) 설령 바꾸고 싶어도 바꾸기 힘들 뿐만 아니라 iii) 어차피 제약 사항이 강하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지나가다”와 같은 정말로 생각 없이 휘갈겨 놓은 가명을 문제 삼을 순 있어도, 그 사람이 꾸준히 써 오던 필명을 문제 삼는 것은 참으로 생각 없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현실 사회의 관계를 굳이 온라인에서까지 끌어 오고 온라인에서의 관계를 끊어 버리려고 하는 듯한 모 SNS들의 행동이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다.


  1. 영어에서 흔히 pseudonym이라고 부르는 말인데, 사실 이걸 그대로 “가명”이라고 번역하기에는 용례가 가지각색이어서 무리가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함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장시간동안 유지하는, 법적인 이름이 아닌 또 다른 이름”인데 여기에 딱 들어 맞는 용어가 한국어에도 영어에도 없다(heteronym이라는 말이 있긴 한 모양이다만). 장시간 유지하는 게 포인트인지라 일반적인 “가명”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개념임을 유의할 것. 


노트들

  1. arachneng posted this
텀블러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