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7일 망할 놈의 집 (2)
어쩌다 보니까 대전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집에 얹혀서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실은 그게 최근 글을 못 쓰는 이유 중 하나인데(바쁘니까) 그건 뭐 그렇고, 집에 와서 느끼는 점이라고는 내가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했구나 하는 후회 뿐이다. 예전에 같은 제목의 글로 그 불만을 토로했건만 그다지 나아진 건 없다.
내가 만에 하나 자식을 가진다면, 만약 자식이 (내가 보기에) 바람직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경우 나는 “그 일을 하지 말라”라는 고압적인 지시보다는 (좀 자신이 없긴 해도) “그 일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라는 토론을 할 작정이다. 이를테면, 왜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지켜야 하는가? “지켜야 하니까”라는 답변은 전혀 쓸모가 없다. 사실 그렇게 듣고 자라 온 많은 사람들은 커서 절대로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지키지 않는다. 그보다 더 정확한 답변은, “도로는 보통 차가 다니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다닐 수 없게 하면 길을 건널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시간동안은 차가, 일정 시간동안은 보행자가 다니도록 서로 약속해 놓는 것”이라는 내용이어야 한다.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당연히 교통사고가 일어날 것이니까.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날아 올 수 있다. “그럼 모든 횡단보도를 육교로 만들면 되잖아요?” 이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기 엄마들과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해 설명해 줄 차례이다.
이런 접근은 좀 시간이 걸리고 항상 쓸 수 있는 접근이 아니긴 하지만, 만약 접근이 먹힌다면 고압적인 지시보다 훨씬 바람직한 게 확실하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자식한테 횡단보도를 육교로 만들지 않는 이유를 “그러면 불편해 할 사람들이 많으니까”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사실 우리는 이 모든 게 돈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만약 자식이 충분히 나이가 충분히 된다면 저 답변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고, 그렇다면 부모도 “나도 잘 모르겠다”라는 항복 선언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이 때 단순히 항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돈 때문에 못 세우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자식과 함께 자료를 찾아 보고 토론을 한다면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일에 대해 토론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적절한 타협점이 필요하다.1
나는 모든 사람이 저러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 부모님께서 저런 노력이라도 하는 시늉이라도 보여 주셨으면 하는 기대는 다소 있었다. 물론 그 기대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 완전히 시궁창으로 빠지고 말았지만. 텔레비전(그렇다, 그 망할 바보상자 말이다!)에서 지나가는 얘기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 들이고, 실제로 그게 옳은지 그른지 찾아 보거나 적어도 얘기를 나눠 볼 생각 없이 무지막지하게 강요를 하며, 그 강요에 대해서 적절하게 응수하려고 하면 정신승리 급의 논리로 대화를 원천 차단하는데 무슨 기대가 필요한가? 녹즙이나 과즙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과일을 살 생각은 안 한 채 포도즙을 두 상자를 배달시켜서 대재앙을 일으킨 사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악을 쓰면서 힘겹게 설득을 시키는 장면이 상상되시는지?
그렇기에, 나는 적어도 내 자식(생긴다면…)한테는 내 부모님의 과오를 되풀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제대로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중에 이 글을 읽는 미래의 자식이 내가 소싯적에 이런 생각을 하긴 했구나, 하고 내 사정을 이해라도 해 줄 수 있으면 절반 정도는 성공한 게 아닐까. 모름지기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했으니, 부모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내 자신을 바꿔 나가야 할텐데 꿈은 높고 현실은 그저 그렇다. 그래도 노력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