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글, 두번째 글에서 이어진다. 거의 1년동안 방치되어 있던 초안을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해 둘 수 없다는 까닭으로(…좀 더 정확히는 저널을 지나치게 방치했다 싶어서) 써 놓은 부분까지 정리하고 올리기로 했다. 그러니까 원래 이번에 들어 가야 했을 이지투디제이는 다음 기회에
팝픈뮤직
코나미의 리듬게임 개발 역사는 크게 세 개로 나눌 수 있는데, 리듬게임이라는 장르 자체를 확립한 시기(1997~2002), 이어뮤즈먼트 서비스가 등장하며 플레이어별 서비스가 가능해진 시기(2002~2008), 그리고 인터넷과의 강력한 연계가 이루어진 시기(2008~현재)로 나눌 수 있다. 당연히 1997년에 처음 발매된 비트매니아와 1998년에 발매된 댄스 댄스 레볼루션은 첫 시기에 속하는데, 여기에 속하는 또 다른 게임이 있다는 건 리듬게임을 어지간히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팝픈뮤직(1998년 발매)은 한국에서 정말 찾아 보기 힘든 리듬게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팝픈뮤직을 2006년 경에 학교 근처에 있던 오락실에서 지인의 소개로 처음 접했다. 한국의 팝픈뮤직 발매 역사는 정말 이상해서, 2012년 현재 최신 버전이 20인데 지금껏 정발된 버전이 1과 8밖에 없다.1 그나마 팝픈뮤직 1은 지금의 팝픈뮤직에 비교하면 매우 어중간한 작품이기 때문에 제대로 즐기려면 8을 해야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오락실에서는 그제껏 8을 돌리고 있었다. 그 때 나온 최신 버전의 곡을 즐길 수 없다는 건 불행이었지만, 팝픈뮤직의 주요 버전을 얼추 다 접할 수 있어서 버전 사이의 오묘한 차이들에 익숙하다는 건 다행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이런 차이가 한 둘이 아닌데, 대표적인 예로 배속을 0.5 단위로 변경 가능하게 된 게 15부터이다.) 그 오락실이 망한 뒤에는 대전역 근처에 있는 오락실(14를 돌리다가 나중에 15로 바꿨다)에 갔고, 서울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광명시에 있던 오락실(15)에 갔으며, 그 뒤에는 딱히 가까운 오락실이 없어서 그냥 어쩌다가 있는 오락실에 갈 일이 생기면 한 두 번쯤 해 보는 수준이 되었다.
팝픈뮤직 8을 처음 접한 것은 한 가지 장점이 더 있었는데, 여기에서 추가된 곡의 대부분이 “적절히” 어렵지 “미친듯이” 어려운 경우는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다. 레벨2이 40을 넘는 곡이 심심하면 추가되는 지금의 팝픈뮤직과는 달리 8에서 추가된 40을 넘는 곡은 딱 두 개였고, 이 둘을 빼면 나머지는 한 번 시도는 해 볼만한 느낌이 드는 곡들이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 8에서 가장 좋아했던 곡은 단연 100sec. Kitchen Battle!!일텐데, 이 곡은 (지금도) EX가 없고 HYPER(레벨 36)밖에 없기 때문에 한동안은 이 곡을 깨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만약 내가 최근작(이를테면, 18이라고 해 보자)으로 팝픈뮤직을 시작했다면 이러한 단계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뒤 팝픈뮤직 14를 접하면서 새 목표는 BAROQUE HOEDOWN(EX 40)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클리어 가능한 곡의 범위가 레벨 40 근방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 범위는 지금도 크게 바뀌지는 않아서, 레벨 40은 어떤 건 깨고 어떤 건 못 깬다. 아주 최근에야 41을 조금 깰 수 있게 되었다.
팝픈뮤직이 다른 리듬게임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을 든다면 역시 커다란 버튼일 것이다. 혹자는 이게 비시바시 챔프에서 남은 버튼을 쓴 거 아니냐는 농담도 하긴 하는데3 실제로 해 보면 누르는 감촉이 조금 다르다. 아마도 사람들이 다 세게 눌러서 고장나기 쉽기 때문에 내구도를 높이려고 뭔가 조정을 한 것 같은데,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팝픈뮤직은 플레이를 하다 보면 싫어도 어쨌든 기계를 부수게 되는 흔치 않은 리듬게임이다.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에는 기계 말고도 손도 부수게 되었다(…). 한 번은 열심히 플레이를 하고 나니까 중지 마디의 피부가 벗겨져서(!) 매우 쓰라렸는데, 아직 남은 판이 있어서 휴지로 응급처치를 하고 마저 플레이한 뒤에 반창고를 붙였던 일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런 일이 몇 번 있고 나서는 항상 반창고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안 그러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내 손배치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한데, 손배치를 바꾸기에는 더 이상 팝픈뮤직을 맘놓고 할 시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한 때는 열심히 팝픈뮤직을 즐겼던 나라고 해도 팝픈뮤직에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 이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은데, (특히 고난이도) 곡들의 레벨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당장 레벨 43 곡들 중에도 윗물과 아랫물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있다는 것도…) 43까지 가지 않아도 40에서도 나눌 것들이 꽤 있는 판이다. 현재의 레벨 시스템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플레이어들의 요구를 따르기 위해 꾸준히 고난이도 곡들이 추가되었지만 최고 레벨을 그에 비례하도록 늘릴 생각은 안 하고 있는 레벨 시스템에 끼워 맞추다 보니 밀도가 높아진 것인데, 비록 버전이 올라가면서 계속 재조정이 되고 있다고는 해도 40~43 사이의 곡들을 4개의 단계만으로 구분하는 데는 굉장히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유비트
유비트는 여러 가지로 언급할 가치가 많은 게임인데, 코나미 리듬게임 역사의 세 시기 중 마지막 시기를 화려하게 연 게임이자 한국에서 모든 주요 버전이 꾸준히 정발되고 있는 유이한 비매니 시리즈(리플렉 비트가 나오면서 이 기록을 깼다)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실은 처음에 유비트가 한국에서 필드 테스트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가서 해 본 뒤에도 이게 실제로 출시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학교 근처 오락실에 유비트가 들어 오기 전까지는.
뭐 아무튼, 나는 유비트를 초기작부터 계속 해 왔다(물론 앞에서 말했듯 초기작이 정발되자 마자 시작한 건 아니다). 유비트는 일본에서는 2008년 7월에 나왔지만 한국에서는 12월에 정발되었는데, 내가 실제로 플레이를 시작한 2009년 6월에는 이미 유비트가 전국 오락실에 상당히 분포되어 있던 터라 팝픈뮤직과 같이 오락실이 사라지면 게임을 못 하게 되는(…) 불상사는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나 같은 경우 초기작을 다음 버전(리플즈)이 나오기 두 달 전부터 했기 때문에, 초기작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애매한 상황들을 겪지는 않고 바로 리플즈로 넘어 갔기 때문에 초기작부터 했다고 말하기가 살짝 애매하긴 하다.4
유비트는 다른 비매니 시리즈에 비해서 난이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이건 코나미 리듬게임 역사에서 마지막 시기에 처음으로 출시된 게임군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오랫동안 하게 만드는 게, 즉 대중적으로 만드는 게 게임의 성공에 도움이 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진리를 공격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기존의 플레이어들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최상위 난이도는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는데, 최상위 난이도라고 해서 클리어가 불가능하거나 한 수준까지 가지는 않는다. 당장 팝픈뮤직을 하는 사람한테 사일런트(EX 레벨 43, 실제 제목은 그냥 “음악”이지만 보통 이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음)를 시켰을 때 깰 확률과 유비트 하는 사람한테 에반스(EXTREME 레벨 10)를 시켰을 때 깰 확률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5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아직도 논쟁이 많지만, 나는 우선 신규 플레이어의 유입이라는 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뭐, 꼭 좋은 것만은 아닌게, 예전에 유비트 니트의 난이도 체계가 슬슬 이상해지고 있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이 점은 다음 작인 유비트 코피어스에도 비슷하게 이어져서 레벨 8과 9는 슬슬 둘로 나눠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준이 되었다(투덱의 12레벨 체계?!). 여기에는 유비트의 너무 낮은 난이도도 한 몫을 하는데, 난이도가 너무 낮으니 BASIC이나 (yellow head joe 같은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ADVANCED는 찬밥 신세고 EXTREME을 많이 하게 되지만 EXTREME에 넣을 수 있는 패턴의 난이도가 고르게 분포해 있을 리가 없다. 레벨 8과 9는 다른 게 아니라 EXTREME의 평균 난이도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특히 심하게 나타난다.6 전곡 순회와 저렙곡 엑설런트를 권장하는 달성 과제 시스템은 이런 점을 보완하려 한 흔적임이 확실하지만, 과연 그게 얼마나 어필했는가는 의문이 든다.
분석은 이 쯤 하고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결과적으로 유비트는 내가 하는 아케이드 게임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돈(1년에 20만원 쯤?)을 갖다 바치는 돈 먹는 하마 게임이 되었다. 전혀 S를 못 찍을 것만 같았던 에반스조차도 이제 S가 두렵지 않은 수준이 되었고7, 어쩌다 한 번 삘 받을 때 하는 엑설런트 곡 수도 70개를 넘었고, 웬만한 곡은 이제 SS를 못 찍으면 뭔가 심신이 굉장히 피곤함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로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내가 오락실에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큰 동인이기도 하니 이쯤 되면 이 시리즈 전체의 맥락인 리듬게임 “인생”을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는 게임일 것 같다. 물론, 앞으로도 할 얘기는 많다.
차회 예고
왠지 내년에 올라올 낌새가 만만치 않지만 아무튼 다음 글을 쓴다면 이지투디제이와 비트매니아 IIDX를 다루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그 뒤에도 글을 대략 네 개 정도 더 써야 할텐데 남은 글들의 얼개를 어떻게 짜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4편부터 쓴 뒤에 걱정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