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8일 공공재가 된 것들의 운명
몇 달 전에 잘 알고 지내는 정 진명 군이 이런 트윗을 올린 적이 있다: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한국어 문화 향유자들의 공동 재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놀랄 정도로 단순히 어떤 개인에 부담이 강하게 걸리는 정도인 상태로 존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 IRC 네트워크부터…
내가 그 모 IRC 네트워크를 만든 사람인지라 이 트윗은 꽤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는데, 그저께(2013-04-16)의 사건을 보니까 이 트윗이 함의하는 바가 생각보다 넓은 듯 하다. 사실 이 사건이 꽤 넓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이리 시끄러워진 것 뿐이지, 한국 인터넷에서 이런 종류의 일들은 흔히 일어난다. 대강 살펴 보면,
- 어떤 사람이 그냥 심심해서, 또는 재미로, 또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쓸 목적으로 사이트를 만든다.
- 사이트가 무럭 무럭 커간다.
- 사이트가 개인의 역량을 넘어갈 정도로 커진다. 이 시점에서도 운영자는 사이트의 목적을 본래 만든 목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그렇게 운영한다.
- 사이트 안팎에서 사건이 터진다. 운영 미숙으로 인한 사건일 경우도 있지만 사실 어떤 사건이든 상관 없고 충분히 파급력이 있기만 하면 된다.
- 운영자는 지탄을 받고 그제서야 지나치게 커진 사이트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크게 다음과 같은 선택지가 있다.
- 사이트를 폐쇄한다. 보존주의자한테는 아주 짜증나는 일이긴 하지만 개인에게는 가장 속 편한 선택일 것이다.
- 사이트를 폐쇄에 가깝도록 방치한다. 대부분의 경우 서서히 잊혀지지만, 이미 사용자가 많을 경우 안 그럴 수도 있다.
- 사이트 운영을 도울 사람들을 모은다. 다만 이 사람들이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고, 신뢰할 만하거나 기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 사이트를 다른 개인이나 기업 같은 다른 운영 주체에게 넘긴다.
- 사이트를 부업 또는 전업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상업화한다. 보통은 욕 먹는 지름길이다.
- 아주 드문 사례로, 사이트의 운영 주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경우 사이트를 누구나 운영할 수 있는 형태로 배포하는 경우도 있다. 대형 사이트에서는 보기 힘들다.
이는 내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사이클”이라 부르는 일반적인 시나리오의 앞부분에 해당한다. (뒷부분은 지금 얘기하기에는 굉장히 길다.) 몇 가지 실제 사례를 통해 이게 얼마나 일반적인지 느껴 보자.
IRC 네트워크
IRC 네트워크는 IRC라는 공개된 프로토콜을 써서 특정 주제에 대한 채팅을 즐길 수 있는 서비스…라는 건 훼이크고 그냥 온라인 채팅 커뮤니티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웹 사이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시나리오를 꽤 충실하게 따르는 경우가 많다.
많이 아시겠지만 HanIRC라고 평균 1만명 정도가 사용하는 한국 최대이자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IRC 네트워크가 있다. (다른 주요 네트워크였던 단군넷은 몇 년 전에 망한 듯 하다.) 이 네트워크는 2008~2009년에 이른바 HanIRC 지라인 사건이라 불리는 일에 휘말렸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불법 파일 공유를 이유로 꽤 많은 사용자들이 차단당했는데 소명 기회를 갖지 못한 일부 사용자들이 이를 문제삼자 무시하고 해당 사용자들을 다시 차단한 사건이다. 그냥 보면 운영진이 잘못한 것 같아 보이지만, 이게 간단하지 않은 문제인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 운영진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HanIRC는 개인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IRC 네트워크는 비교적 적은 서버 자원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 목적으로 서버 한 대에서 돌리는 걸 사용자 수가 수백~수천명이 되도록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실제로 HanIRC는 현재 4대의 서버를 쓴다고 알려져 있다).
- HanIRC는 그냥 보면 운영진들이 꽤 많은 걸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1~2년 활동하고 잠수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활동적인 운영진은 한정되어 있으니(매 순간에 활동하는 운영진 숫자를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라고…), 소명을 위해 필요한 자료 수집이나 각종 판단은 자연히 어려워지게 된다. 물론 당연하지만 HanIRC 운영진 중 직업적으로 HanIRC를 운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 결정적으로, 그 몇 안 되는 운영진들이 HanIRC 관련해서 몇 번 데여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법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꽤 많은 사람들이 HanIRC에 대해 반발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행동이 좋다는 말만은 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최종적으로는 오징어 IRC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실 UTF-8 지원을 비롯한 이런 저런 기능이 필요해서 IRC 네트워크를 만들 필요성은 느끼고는 있었다만. 우리는 HanIRC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몇 가지 정책을 세웠다.
- 네트워크 전체에 명백히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채널 안에서의 분쟁은 운영진이 개입하지 않는다.
- 닉 등록이나 채널 등록과 같은 편의 기능은 최대한 사람 손이 갈 필요가 없도록 만든다.
- 서버 통계나 옵 복구 등의 기술 지원을 제외한 용도로 관리 권한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심지어 그 흔한
/LIST도 사용하지 않는다.) - 기타 서버 관리, 예를 들어 특정 IP에 대한 제한 완화 등은 위 정책에 어긋나지 않는 수준에서 재량에 맡긴다.
뭐, 지금 살펴 보면 완벽한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초창기에 서버 관리자를 확충하던 과정에서 이상한 사람이 들어 와서 권한을 제거해야 했다거나(전적으로 내 불찰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손이 안 가는 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데 사람 손이 필요해서(…) 한동안 시스템이 돌아만 가는 수준에서 방치되고 있었다거나, 서비스 개발이 가능한 사람을 확충했더니 서비스 변경으로 인한 불만 사항이 좀 접수된다거나(어쩔 수 없다고 보고 있음) 뭐 그런 것들. 그래도 아예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못박으니 기술적인 이슈에만 신경쓸 수 있어서 부담이 덜하다. 앞으로는 어쩔지 모르겠지만.
한편 다른 대규모 IRC 네트워크는 어쩐가 하면,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IRC의 초창기에는 모든 서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으면 서버 연결로 기여를 하고 못 하면 내리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네트워크가 여럿으로 쪼개진 지금도 딱히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여기의 대표적인 예외로 Freenode가 있는데, Freenode의 경우 자유 및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PDPC라 하는 비영리 단체를 통해 기부를 받는 식으로 서비스를 유지해 왔다. 다만 PDPC의 경우 설립자가 꽤 강하게 밀어 붙였고 그 과정이 항상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리듬게임 기록 서비스
리듬게임은 장르 특성상 게임을 이전에 비해 얼마나 잘 하게 되었는가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자기의 역대 플레이 기록이나 가장 좋은 플레이 기록을 어떤 형태로든 보존하는 수요가 높았고, 특히 코나미의 웹 서비스를 크롤링하거나 해석해서 좀 더 보기 좋은 형태로 기록을 보여 주는 사이트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마련이었다.
유비트의 경우 이러한 사이트의 대표적인 예제로 유비그래프와 유비트인포가 있는데, 지금 와서는 그렇게 비밀은 아닌 것 같지만 난 유비트인포의 서버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왔고 일부 버전에서는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비트인포는 지금은 거의 망(…)했지만 한때는 사용자가 6천명을 넘기고, 한국에서 유비트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용하는 나름 규모가 큰 서비스였었다.
유비트인포의 역사 또한 위의 시나리오에 정확히 부합한다. 실제 사건과 맞춰서 나열해 보면,
- 내 서버를 사용하던 사람 중 누군가가 iOS 앱에 사용할 목적으로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게 유비트 리플즈 시절.
- 유비트 니트가 나올 무렵게 마침 나도 유비트를 하는데 사이트가 좀 거지같으니 잘 고쳐 보자(…) 하고 나도 소스 코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 이 당시 유비그래프는 코나미의 기록 열람 유료화 때문에 직접 크롤링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크롤링을 자동으로 해 주는 유비트인포를 대신 쓰게 되었다. 이 흐름은 유료화가 풀린 유비트 코피어스에 와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 개발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조리 생업에 바빠지면서 유비트인포의 운영이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사실 유비트인포 코피어스에서 체감할 수 있는 유일한 변화는 디자인 변경 뿐이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우리는 유비트의 다음 버전인 소서가 나오는 대로 PHP로 만들어진 낡디 낡은 유비트인포 소스 코드를 버리고 파이썬으로 재작성하기로 했다. 사실 나 말고 다른 개발자가 프로토타입으로 파이썬 코드를 짜긴 했으나, 서버 설정 이슈도 있고 깔끔하지만 문제가 제법 있는 소스 코드보다는 우선은 잘 돌아가는 더러운 코드가 낫다고 내가 강력히 주장하여 보류되었던 것이었다. 근데 정작 소서가 나올 즈음에 개발자들 전원이 매우 바빠져서 개발을 진행할 수 없었고, 그대로 한 두 달 정도 사이트가 방치되니 사람들이 대체제를 만들기 시작하더라(…).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지금의 소서게이트 같은 거다.
사실 유비트인포의 결말(?)은 어느 정도 이전에 예견되어 있었다. 리플렉 비트 라임라이트가 나올 적에 우리는 (가칭) 리플렉인포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빠르게 진척되지 않았다. 그래서 리플렉인포가 정말로 런칭되었을 때 우리는 놀고만 있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당시 작성하던 코드를 대강 대충 마무리해서 급하게 런칭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리플렉의 경우 곡 정보 추가를 수동으로 하는 게 상상 이상으로 귀찮아서1 완벽하게 망하고야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와 다른 개발자 사이의 입장차는 꽤 명확했다. 나는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계속 유지하자”는 입장이었고, 다른 쪽은 “일단 시작은 해야 다음을 볼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문제의 RBinfo(저 쪽 리플렉인포와 혼동되지 않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어느 시점에서는 유지도 안 되는 거 그냥 폐쇄하자고 했지만 어느 쪽도 실제로 폐쇄를 시킬 여력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IRC 네트워크와는 달리, 유비트인포가 방치된 이후에도 사실 아무 것도 바뀐 건 없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유비트인포가 망한 건 안타깝긴 하지만 어쩌면 이게 더 올바른 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체 가능한 서비스라면 그 서비스를 당장 잘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운영하는게 더 나았을 거라는, 그런 종류의 생각 말이다. 소서게이트도, 리플렉인포도, 그리고 그 밖에 소규모로 운영되는 꽤 많은 서비스들(유비트만 해도 이러한 서비스가 최소 서너개는 있는 걸로 안다)까지, 결국 우리가 하지 못 했던 일을 아쉽게나마 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유비트인포 소서가 뒤늦게 시작할 때도 더 이상 개발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까.
위키
당연하지만 위의 시나리오는 위키백과 같은 위키 사이트에도 적용된다. 단지 위의 사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위키백과는 위기를 제대로 극복해 냈다는 점이다. 위키백과가 비판받는 점은 위키백과의 특성으로 인해 생기는 복잡한 규칙과 사건들이지 위키백과의 운영이 개판이라는 종류의 지적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운영이 깐깐해서 문제가 되었다면 모를까.
위키백과는 본래 누피디어라는 온라인 백과사전 사이트에서 시작되었다. 누피디어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쓰고 강력한 동료 평가(peer review)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위키백과와는 많이 달랐는데, 동료 평가 과정의 일부를 사용자 참여로 하게 하려고 위키를 도입했던 것이 주객전도가 된 것이다. 그래서 위키백과 극초창기의 충돌은 창립자인 지미 웨일스와 누피디어의 편집장이었던 래리 생어의 충돌로 표현할 수 있다. 결과는 래리 생어가 나가서 새로운 백과사전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으로 끝났고, 다들 알다시피 그 프로젝트는 좆망했고 위키백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백과사전이 되었다.
여기까지 읽어 보면 지미 웨일스를 위인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의 행적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면 그가 오로지 공공의 이익만을 위해 이 일들을 해 왔다는 생각에는 회의가 들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위키백과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문서를 수정하는 건 금기시되는데, 그는 자기가 운영했던 사이트에 대한 내용을 고쳐 쓰거나(그가 공동 창립자이며, 누피디어를 운영했었던 보미스는 사실 포르노 검색 등등을 갖춘 남성향 성인 포털 사이트였다) 위키백과의 초창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것으로 판단되는 래리 생어를 공동 창립자가 아니라고 자의적으로 바꾸면서 욕을 꽤나 먹었다. 그 밖에도 그가 위키미디어 재단을 운영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제법 있었는데, 특히 2010년에 음란물로 간주될 수도 있는 이미지를 허용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에서 공동체를 무시하고 이미지를 대거 삭제하면서 욕을 제곱으로 먹었다. 결국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위키백과의 기술적인 권한을 대부분 반납하게 되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시사하는 것이 무엇인가? 위키백과가 성공한 것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위키백과를 이끌어 나가는 일련의 기여자들의 참여에 따른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지금까지 언급했던 대부분의 사례와는 달리 위키미디어 재단을 비롯한 “운영자”로 간주될 수 있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프로젝트의 창립자이며 자칫하면 신성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질 수 있는 웨일스조차도 비판하고 그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 거기에 따른 제재를 내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여기에는 위키미디어 재단이 비교적 빨리 만들어진 것도 한몫했다(프로젝트 시작 후 2년만인 2003년에 위키백과의 상업화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때문에 위키백과는 민주주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위키백과에서의 활동은 민주주의의 이상향—투표보다 총의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과 많이 닮아 있다.
엔하위키
위에서 세 가지 예제를 들긴 했지만, 사실 앞의 시나리오는 거의 모든 한국 사이트에도 적용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저 세 가지 예제를 든 이유는 바로 이들 사이트가 인터넷 상에서 일종의 공공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가 아닌 굳이 세 가지 예제를 든 이유는, 각각의 예제가 i) 운영진의 독단이 유지되는 사례와 ii) 대체재가 나타나는 사례와 iii) 운영진이 커뮤니티로 교체되는 사례를 잘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세번째 사례이며, 그리하여 우리는 이 글의 원래 주제로 되돌아간다.
엔하위키를 명백한 공공재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공공재에 속하는 서비스를 몇 개 운영했던/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엔하위키가 처한 딜레마에 대해 십분 공감하면서도 다시금 되물을 수 밖에 없다. 엔하위키의 운영진들은 엔하위키가 앞으로 어떻게 되길 원하는가? 그들이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의 적절한 사이트가 되길 원하는 것인가? 서브컬쳐를 지원하고 부흥시키기 위한 전진 기지와 같은 사이트가 되길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운영진들에게 모종의 이익이 되는 사이트가 되길 원하는 것인가? 어떤 답이 나오든간에 내가 그 답에 대해서 뭐라 할 자격은 없다(사실 난 엔하위키가 공공재가 되지 않고 싶어하고 거기에 맞도록 행동한다 해도 불만을 가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답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한, 엔하위키가 당장 처한 문제가 커뮤니티의 행동을 통해 회피되거나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4월 18일 0시 50분 추가: 아, 클리앙에서 내 글을 퍼간 것 때문에 이슈가 된 것 같은데, 내 글을 퍼가는 건 별로 괘념치 않지만 갱신되는 건 웬만하면 좀 제대로 따라가 줬으면 좋겠다. 또한 내 글에 대해 의문이나 반론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 주시면 시간 나는 대로 응답해 드리겠다. (왜 블로그같이 생겼는데 댓글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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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비트인포도 마찬가지였다. 유비트인포 소서에서 코드 재작성을 하려 했던 이유 중 하나는 기본적인 곡 정보를 자동으로 받아 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
